이규배 교수 / 고려대 안암병원
연말이 되면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몸의 변화들이 하나둘 체감된다. 쉽게 가시지 않는 피로감, 계단을 오를 때 느껴지는 숨 가쁨은 그 대표적인 신호다. 흡연자라면 이런 순간마다 한 번쯤 ‘담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특히 겨울로 접어들수록 이러한 변화는 더욱 분명해진다. 추운 환경에서는 체온 유지를 위해 피부 말초혈관이 수축하고 전신 혈관저항이 증가한다.
그 결과 혈압이 상승하고 심장은 더 높은 압력에 맞서 일을 해야 하는 상태가 된다. 자연스럽게 심근이 필요로 하는 산소량도 함께 증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흡연이 더해지면 심장과 혈관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한층 커진다. 니코틴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혈압과 심박수를 올리고 심근 수축력을 증가시킨다. 이는 심근의 산소 요구량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특히 심부전이 있거나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의 경우, 흡연으로 인한 관상동맥 수축은 이미 증가한 심근의 산소 요구량에 비해 공급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여기에 흡연 과정에서 생성되는 일산화탄소가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까지 떨어뜨리면 심근 허혈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금연을 시작하면 몸은 생각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담배를 끊은 지 약 20분만 지나도 혈압과 맥박이 점차 안정되기 시작한다.
하루가 지나면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면서 심장이 받는 부담이 줄어들고 48시간 이내에는 후각과 미각이 회복되며 음식 맛이 좋아지는 변화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후 몇 달이 지나면서 혈액순환과 폐 기능이 서서히 회복되고 숨이 차는 증상이 완화된다. 약 9개월 정도가 지나면 아침마다 반복되던 기침과 가래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연을 지속했을 때의 장기적인 효과는 더욱 분명하다. 금연 1년 후에는 심근경색 등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흡연자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뇌졸중, 폐암을 포함한 각종 암의 위험도 점차 낮아진다. 흡연 기간이 길었거나 나이가 많더라도 금연의 효과는 예외 없이 나타난다. 금연은 ‘언제 시작하느냐’보다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많은 흡연자들은 금연을 혼자 참아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니코틴 의존은 단순한 습관 문제가 아니라 뇌의 보상 체계와 관련된 중독 질환이다.
금연 과정에서 불안, 초조,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같은 금단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규배 고려대 안암병원 가정의학과 이규배 교수는 “금연 실패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히려 금연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어 “금연클리닉에서는 흡연 기간과 흡연량, 니코틴 의존도를 평가한 뒤 금단 증상과 흡연 갈망을 조절하는 약물 치료, 흡연을 유발하는 상황을 관리하는 상담 치료를 함께 진행한다”며 “이러한 치료를 병행하면 금단 증상을 줄이고 금연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금연 후 체중 증가나 스트레스를 걱정하는 분들도 많지만, 금연이 가져오는 건강상의 이득은 체중 변화보다 훨씬 크다”며 “과거에 금연에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전문 의료진과 함께라면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금연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다시 살피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오늘의 한 개비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변화는 이미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