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홍준 교수 / 건국대병원

중년 이후 갑자기 나타나는 망상이나 돌발적 성격 변화가 흔히 조현병이나 망상장애 같은 정신질환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치매의 초기 신경퇴행성 변화를 시사할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노인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전홍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근거 없는 의심이나 성격의 급격한 변화, 필요 없는 물건을 쌓아두는 행동 등이 두드러질 때 단순 정신병 증상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치매 초기 신호일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홍준 교수는 많은 환자들이 치매를 “기억력 저하로 시작된다”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기억력 변화보다 행동·심리증상(BPSD)이 먼저 나타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누군가 물건을 훔쳐갔다’는 확고한 망상, 평소와 다른 예민함이나 충동적 행동, 사소한 자극에도 분노를 표출하는 공격성, 필요 없는 물건을 반복적으로 모으는 저장행동, 감정 기복이나 불안·우울 등 정서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증상은 겉으로 보면 조현병 등 도파민계 이상으로 생기는 정신병적 질환과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병의 진행 양상과 신경학적 기반은 확연히 다르다.

전 교수는 “특히 중년 이후 갑자기 시작된 행동 변화는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환경적 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영상검사나 신경인지검사를 시행하면 치매 초기 변화가 확인되는 사례가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PET-CT, 정밀 뇌영상 기술, 혈액 기반 바이오마커 등 진단 기술의 발달 또한 치매 조기 발견의 정확성을 높이고 있다.

전 교수는 이 같은 하나의 변화가 환자의 치료 방향에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치매를 정신병으로 오인해 항정신병 약물 치료만 장기간 지속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치매로 인한 신경퇴행성 변화가 근본 원인일 때는 오히려 증상 악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도입된 항체치료제의 등장으로 초기 진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전 교수는 “항체치료제는 알츠하이머병에서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표적으로 작용해 질병 진행을 늦추는 데 도움을 준다”며 “기존 치매 치료제와 작용 기전이 달라 초기 단계에서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할수록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년 이후 갑작스럽게 나타난 행동 변화는 단순한 성격 변화나 정신병적 장애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조기에 전문적인 평가를 받고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증상 악화를 막고 환자 및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