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교수 / 고려대 안암병원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안 돼”, “완벽해야 해.”

이런 자기 압박은 청소년들을 음식 앞에서조차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표면적으로는 외모 관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섭식장애가 도사리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거식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가운데 10~19세 청소년 환자가 전체의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 비율에서는 남성 환자가 2525명인 반면, 여성 환자는 11885명으로 여학생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청소년기 여성이 외모에 대한 사회적·심리적 압력에 특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섭식장애는 단순히 음식을 적게 먹거나 많이 먹는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를 정신건강 질환으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체중이 표준 체중의 80% 이하이거나, 체질량지수(BMI)가 17 이하일 때 섭식장애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대표적인 유형은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대식증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음식을 극도로 제한해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질환으로,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신체 장기 기능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

신경성 대식증은 반복적인 폭식 후 구토, 설사약이나 이뇨제 남용으로 이어져 신체에 큰 부담을 준다.

청소년기는 신체적 변화가 두드러지고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다. 그러나 또래 집단 내 경쟁, SNS 속 비교 문화, 미디어가 만들어낸 왜곡된 미의식은 청소년들에게 강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특히 외모 중심적 가치관이 강화되면서 단순히 예뻐 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확대된다.

이런 압박은 결국 자존감 저하, 우울, 불안으로 연결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섭식장애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섭식장애는 결코 단순한 식습관 문제가 아니라 정신 건강 문제와 직결된 복합 질환이다.

김수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섭식장애는 음식 섭취 문제를 넘어 청소년기의 정신 건강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조기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울증, 불안 장애는 물론, 심한 경우 자살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청소년 스스로도 자신의 감정과 신체 변화를 민감하게 살펴야 하며, 변화가 나타날 경우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섭식장애가 발현된 이후 치료를 시작하면 회복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가족과 교사, 또래 친구 등 주변인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청소년들이 비교와 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섭식장애 예방의 첫걸음이다.

청소년 섭식장애는 단순히 외모 관리에 집착한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압박과 정신 건강 위기에서 비롯된 심각한 질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강한 성장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