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김재호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 김형민 박사, 연세대학교 약학과 김영수 교수 /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약물을 투여하지 않고 초음파의 물리적 에너지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물질을 제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제시됐다.
기존 항체치료제가 안고 있던 부작용과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비침습적 치료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경과 김재호 교수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마우스 모델에서 집속 초음파를 이용한 아밀로이드 플라크 제거(Clearance of amyloid plaque via focused ultrasonication)’ 연구를 통해 초음파만으로 뇌 속 병리적 단백질을 분해·제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바이오닉스연구센터 김형민 박사, 연세대학교 약학과 김영수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수행됐다.
알츠하이머병은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이 서로 응집해 신경세포를 손상시키는 대표적인 퇴행성 뇌질환이다.
이 단백질들이 덩어리를 이루며 형성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는 신경 신호 전달을 방해하고 세포 사멸을 유도한다.
특히 내부에 형성되는 섬유(Fibril) 구조는 매우 단단하고 독성이 강해 자연적인 분해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임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레카네맙, 도나네맙 등 항체치료제는 면역 반응을 통해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일정 수준의 효과는 확인됐지만 고비용 구조와 함께 뇌부종, 뇌출혈 등 중대한 부작용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저강도 집속 초음파(Low Intensity Focused Ultrasound)’에 주목했다. 초음파를 특정 부위에 집중시켜 발생하는 미세한 진동 에너지가 단백질 결합을 물리적으로 분해하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약물이나 외과적 시술 없이도 병변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침습적 치료법으로 평가된다.
실험은 시험관 연구와 동물 실험을 통해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먼저 시험관 환경에서 응집된 아밀로이드 베타에 초음파를 조사한 결과 단단하게 엉켜 있던 아밀로이드 섬유 구조가 최대 62% 감소했다.
신경 독성이 가장 강한 형태로 알려진 올리고머(Oligomer) 역시 최대 65%까지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알츠하이머병 마우스 모델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도출됐다. 초음파 치료 후 뇌 조직 내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수와 크기가 눈에 띄게 감소했으며 혈중 아밀로이드 농도는 약 66% 증가했다. 이는 뇌에서 분해된 아밀로이드가 혈류를 통해 체외로 배출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어 초음파 처리를 거친 아밀로이드 응집체의 독성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인간 유래 신경모세포주 SH-SY5Y를 이용한 실험을 진행했다.
일반 아밀로이드 응집체를 투여했을 때 세포 생존율은 82%였으나 초음파 처리된 응집체를 투여한 경우 생존율은 90%로 상승했다. 초음파가 단백질 덩어리를 분쇄함으로써 신경 독성을 완화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김재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물이나 수술 없이 초음파의 기계적 에너지만으로 뇌 내 병리적 단백질을 제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입증한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뿐 아니라 파킨슨병 등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 치료로 확장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환자 맞춤형 초음파 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해 임상 적용 가능성을 높이고, 난치성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실질적인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SCIE급 국제 학술지 'Theranostics'(영향력지수 IF 13.3) 2026년 1월호에 게재가 확정됐으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선정하는 ‘한국을 빛낸 사람들(한빛사)’에도 이름을 올렸다.
한빛사는 피인용지수 10 이상이거나 해당 분야 상위 3% 이내의 세계적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를 대상으로 선정된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우수신진·중견연구사업 및 중점연구소지원사업, KIST 기관고유사업, 국가과학기술연구회 글로벌 TOP 전략연구단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