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기관에서 근무하던 전직 관료들이 퇴직 후 국내 6대 대형 로펌으로 대거 이직하며 공공과 민간 간 이해충돌 문제와 전관예우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보건의료 정책과 규제의 ‘문지기’ 역할을 했던 인력이 민간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긴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청,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근무하다 6대 대형 로펌으로 이직한 인원은 총 27명에 달했다. 연평균 5명 이상이 로펌으로 옮긴 셈이다.
로펌별 이직 현황을 살펴보면, 김앤장법률사무소로의 이직이 7명으로 가장 많았고, 태평양과 율촌이 각각 5명, 세종 4명, 광장과 화우가 각각 3명씩이었다.
특히 김앤장은 보건의료 분야 규제 및 소송 대응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내 최대 로펌으로 꼽히는 만큼 이직 규모가 가장 많았다는 점에 관심이 쏠린다.
이직 전 소속 기관별로 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출신이 각각 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보건복지부가 8명,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명으로 집계됐다. 반면 국가 백신·감염병 관리의 핵심 기관인 질병관리청은 단 한 명의 이직자도 나오지 않았다.
이는 의약품 인허가와 가격 심사 등 규제 권한을 가진 기관 출신 인사들이 퇴직 후 로펌으로 자리를 옮겨 향후 업계 의뢰 사건에서 ‘정책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이직 후 급여 수준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2명 이상 이직한 경우의 평균 보수월액을 집계한 결과 심평원 출신으로 법무법인 화우에 이직한 인사들의 월 평균 보수는 약 3134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으로 김앤장에 합류한 이들의 평균 보수는 약 2986만원에 달했다. 또 심평원에서 김앤장으로 이직한 경우 평균 보수월액이 593만원에서 2903만원으로 약 5배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공기관 재직 당시 받던 급여와 비교해 현격히 높은 수준이다.
김선민 의원은 “직업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만큼, 퇴직 후 로펌으로 이직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그러나 전직 관료들이 공공기관에서의 경험과 인맥을 활용해 전관예우를 누리고, 이해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능한 관료들이 공공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체계도 중요하다”며 “공직을 떠난 뒤 민간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하려면 공공부문 내 인재 활용과 보상체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