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의원 / 김선민 의원실
=환자 치료에 필수적이지만 수익성이 없어 제약사가 기피하는 약제를 정부가 별도 지정해 공급을 유지하는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25년째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가와 원가가 급등하는 동안 가격은 동결돼 채산성이 낮아지고 결국 생산·공급 중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장방지의약품 628개 품목 가운데 197개(31.4%)가 5년 이상 상한금액이 동결돼 있었다. 이 가운데 20년 이상 가격 인상이 전혀 없었던 품목이 57개(9.1%)로 확인됐다.
대표 사례로 알파아세트아미노펜정(0.5g/1정)은 2000년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된 후 현재까지 정 한 알 11원에 묶여 있다. 25년째 제자리인 셈이다.
이 밖에도 페리돌정, 트리티코정 등 다수의 항정신병제·항우울제가 2000년대 초반 가격 그대로 공급되고 있다.
동결된 57개 중 46개(80.7%)는 상한금액 조정 신청 이력이 전혀 없었다. 정부가 파악한 이유는 “원가보전 신청을 하지 않아도 약가 사후관리(실거래가 조사·사용량 협상 등)에서 제외되고 상한가의 91% 미만 판매 금지로 유통가가 보호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행정적 혜택만으로는 원가 급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크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구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4년 3월까지 79개 품목이 생산·공급 중단을 보고했다.
주된 이유는 낮은 채산성(20.3%), 원료 공급 문제(19.0%), 생산 설비 노후화(17.7%) 등이었다.
결국 정부가 공급을 보장하겠다며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약을 ‘퇴장’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선민 의원은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공공책임 제도”라며 “정부가 지정만 해두고 가격·원가 보전을 방치해 생산 포기와 공급 중단이 반복되는 것은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제약사 신청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정기적 상한금액 재평가 ▲원가산정 기준 현실화 ▲원료공급 위기 시 신속 보전 장치 마련 등 적극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올해 국정감사에서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퇴장방지의약품 제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 전반의 구조적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물가와 원료비 상승을 반영한 정례적 상한금액 재평가 제도가 필요하며 대량 생산이 어려운 특수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원가 반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원료 공급 차질이나 채산성 악화 등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패스트트랙 방식의 신속한 원가 보전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국가 차원의 비축·공공조달 연계 체계 강화를 통해 공급 불안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결국 퇴장방지의약품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약가 동결 관리에서 벗어나 공공책임과 공급 안정성을 함께 담보할 수 있는 종합 대책이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 한 알 11원짜리 약이 25년째 멈춰 있는 현실은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생명권과 직결된 공백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