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훈 교수 / 고려대 안산병원

하루에도 수십 번 키보드를 두드리고 스마트폰을 움켜쥔 채 스크롤을 넘기고 집안일에 손목을 혹사하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손끝이 저릿하거나 잠을 자다 손이 저려 깨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손목터널증후군(Carpal Tunnel Syndrome)’의 신호일 수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손목 속에 존재하는 ‘수근관(手根管, carpal tunnel)’이라는 작은 터널 모양의 구조에서 발생한다.

이 터널을 통해 손가락을 구부리는 힘줄과 함께 중요한 신경인 ‘정중신경(median nerve)’이 지나가는데 손을 반복적으로 많이 사용할 경우 이곳을 덮고 있는 횡수근 인대가 두꺼워지고 힘줄에도 부종이 생기면서 정중신경이 압박된다.

그 결과 정중신경이 지배하는 엄지, 검지, 중지, 그리고 약지 절반 부위에 감각 이상, 저림, 통증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 증상은 손을 많이 사용한 날 유독 심해지며 특히 밤에 자다 깰 정도로 저림이 심한 경우도 흔하다.

진행된 경우에는 엄지손가락을 벌려 물건을 잡는 동작이 힘들어지고 손바닥의 엄지두덩 근육이 위축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는 손목터널증후군이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기능적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치훈 고려대 안산병원 정형외과 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은 단순한 반복 작업뿐 아니라 다양한 내과적 질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당뇨병 ▲갑상선 기능저하증 ▲류마티스 관절염 등 내분비계 및 자가면역 질환이 손목 내 염증과 부종을 유발할 수 있고 ▲만성 신부전 ▲투석 환자 ▲임신 및 폐경기 여성 ▲손목터널 내 종양이나 ▲외상성 골절 등도 모두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이처럼 손목터널증후군은 단순한 국소 질환이 아닌, 전신 건강과의 연관성을 고려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질환이다.

증상이 경미한 초기에는 약물치료나 국소 주사치료로 염증을 완화시키고 신경 압박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비수술적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감각 저하나 근육 위축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손목터널증후군 수술은 비교적 간단하게 시행된다. 손바닥 부위에 작은 절개를 통해 횡수근 인대를 절개함으로써 정중신경의 압박을 해소하는 방식이다.

수술은 국소마취로 가능하고, 15분 내외의 짧은 시간이 소요되며 수술 후 1~2주 내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

하지만 정중신경이라는 중요한 신경을 다루는 수술인 만큼 반드시 수부외과 전문의와 상담 후 신중한 결정을 해야 한다.

예방을 위해서는 손과 손목의 무리한 사용을 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손을 많이 써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평소 손가락과 손목을 늘여주는 스트레칭을 틈틈이 실천하고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를 사용할 때 손목에 쿠션을 대주는 등 정중신경의 압박을 줄이는 생활 습관을 들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오치훈 교수는 “손목터널증후군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지만, 적절한 예방법과 조기 치료를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며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손 저림과 힘 빠짐 증상은 몸이 보내는 중요한 경고 신호일 수 있으므로, 지속된다면 반드시 전문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