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의원 / 김선민 의원실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의료기관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는 ‘의료분쟁 손해배상 대불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구제를 위해 마련된 제도가 가해 의료기관의 무책임과 상환 회피로 인해 재정적 한계에 직면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의료분쟁중재원 설립 이후 의료기관을 대신해 환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한 120건 중 상환이 완료된 사례는 단 9건에 불과했다.
총 대불금 지급액 64억 8449만 원 가운데 상환 완료액은 1억 6578만 원으로 비율로 따지면 2% 수준이다.
나머지 63억 원(98%)은 아직 회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중 약 70%에 해당하는 43억 원은 의료기관의 폐업, 사망, 법인 해산 등으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상태다.
의료분쟁중재원의 대불제도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가해 의료기관의 배상 거부 또는 경제적 무능력으로 인해 배상을 받지 못할 경우 중재원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하고 이후 의료기관에 구상(상환)을 청구하는 제도다.
그러나 제도의 취지와 달리, 실제 상환률은 극히 저조해 제도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폐업 신고를 하고 상환을 회피한 일부 의료인들이 이후 다른 병원으로 이직해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푼도 상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분쟁중재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환을 하지 않은 의료인 중 4명이 폐업 후 재취업했음에도 상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A씨는 2024년 ‘추간판제거수술 중 마취 과정에서 경련 및 호흡정지’ 사고로 환자에게 1억 1,327만 원의 손해배상 판정을 받았으나 의료분쟁중재원이 대신 지급한 뒤 A씨는 폐업을 신고했다.
그럼에도 같은 해 11월 다른 병원에 재취업했으며 현재까지 상환금은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례는 ‘의도적 폐업 후 재취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제도 악용으로, 의료계의 도덕적 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피해자에게 지급된 대불금이 사실상 회수되지 못하면서 의료분쟁중재원의 재정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김선민 의원은 “대불제도는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이 가해 의료기관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배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라며 “그러나 상환률이 2%에 불과하다는 것은 제도의 근본 취지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폐업이나 법인 해산으로 상환이 어려운 경우뿐 아니라, 경제활동이 가능한 의료인들이 고의적으로 상환을 회피하는 경우에는 구상금 소송, 급여압류 등 강제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며 “피해자 보호를 위한 공공기금이 무책임한 가해자들로 인해 고갈되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분쟁중재원은 현재 구상금 회수를 위한 소송과 합의 절차를 병행하고 있으나 재정적 한계와 법적 공백으로 인해 실질적인 회수율 제고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피해자에게 신속히 배상금을 지급한 뒤 의료기관으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매년 누적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사고 피해자 구제를 위해 필요한 공공기금이 방만하게 소진되고 있다”며 “상환 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적 제재 도입, 의료인 재취업 시 상환 여부 확인 제도 등 구체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선민 의원은 “의료분쟁 피해자 구제는 사회 정의의 문제”라며 “피해자가 신속하고 확실하게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를 유지하려면 책임을 회피하는 의료기관과 의료인에 대한 보다 강력한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