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의원 / 김선민 의원실
대형병원의 의료기기 공급 구조가 소수 도매상에 의해 사실상 독점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25곳에서 특정 의료기기 도매상이 공급 비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의약품 분야에서 독점 공급 비율이 90%를 넘는 사례가 8곳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의료기기 공급 독점 현상이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다.
자료를 보면 국공립 상급종합병원에서는 단 한 곳도 특정 도매상이 90% 이상을 독점한 사례가 없었다.
반면 사립 상급종합병원에서는 2023년 24곳, 2024년에는 25곳이 한 도매상으로부터 90% 이상을 공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공립 병원은 대체로 특정 도매상의 공급 비율이 50% 미만으로 분산돼 있어 사립 병원과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예를 들어 A 상급종합병원은 2024년 한 해 동안 13개 도매상으로부터 총 178억 원 규모의 의료기기를 공급받았지만 그중 1개 도매상이 177.9억 원(공급률 99.92%)을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 공급을 했다.
B 상급종합병원은 27개 도매상으로부터 2,202억 원 규모의 공급을 받았으나, 이 중 2,198억 원(99.82%)을 1개 도매상이 독점했다.
C 병원도 150개 도매상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1개 도매상이 177.5억 원(99.79%)을 공급하며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독점적 구조는 현행 법령의 미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의약품은 약사법 제47조에 따라 도매상과 의료기관이 특수관계일 경우 거래를 금지하고 있으나 의료기기법에는 이 같은 규제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병원이 사실상 지배·경영하는 도매상(간납업체)이 독점적으로 납품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또한, 의약품과 달리 의료기기 거래에는 ▲대금 지급 기한 의무 규정 부재 ▲계약서 미작성 사례 빈번 ▲공급내역 보고의 단계적·부분적 시행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 중심 운영 등 제도적 허점이 많아 도매상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일부 도매상은 대형병원으로부터 ▲과도한 수수료 및 할인 요구 ▲대금결제 지연 ▲‘가납(사용 후 지급)’ 강요 ▲계약서 미작성 등 불공정 거래를 강요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선민 의원실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최대 공급 도매상이 간납업체로 운영되는 경우가 31곳(65.9%)에 달했다.
또한, 최대 공급 도매상이 아니더라도 별도의 간납업체를 활용하는 병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70% 이상이 간납업체를 통한 납품 구조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선민 의원은 “현행 의료기기법은 특수관계인의 거래 제한 조항조차 없어 대형병원이 특정 도매상과 사실상 독점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며 “이러한 구조는 리베이트 등 불법적 관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도매상에게 불공정한 갑을관계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의약품뿐 아니라 의료기기 공급에서도 독점 구조가 고착화되지 않도록 긴급히 조사에 나서야 한다”며 “약사법 수준의 거래 제한 규정과 함께 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