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개요 / 한국혈액암협회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급성백혈병 환자들에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으로 인식돼 온 가운데 실제 이식 이후의 삶은 환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여정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혈액암협회는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25일까지 한 달간 급성림프모구백혈병(ALL) 및 급성골수백혈병(AML) 환자 및 보호자 2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동종조혈모세포이식 치료 경험’ 설문조사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조사에 응답한 동종조혈모세포이식 경험자 155명 중 59%가 “이식 이후의 삶이 오히려 이식 전보다 더 힘들었다”고 답했으며 절반 이상인 54%는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이식이 완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많은 환자들에게 충격과 실망으로 다가온 것이다.

무엇보다 이식 후에도 재발의 위험은 여전히 존재했다. 응답자 중 약 24%가 재발을 경험했고 이 중 43%는 재이식을 받아야 했다. 이는 이식 치료가 일부 환자에게 반복적 투병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은 단순히 병리적 문제에만 그치지 않았다. 신체적 부작용으로는 피로 및 무력감(75%), 발진 및 피부문제(63%), 체중 변화(54%) 등이 높은 비율로 나타났으며 불임이나 성기능 장애를 겪은 환자도 42%에 달했다.

정신적 고통 역시 심각했다. 이식 경험자의 68%가 우울감, 불안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으며, 이 중 다수는 일상생활 자체가 제한되는 수준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복귀 또한 큰 장벽이었다. 전체 이식 경험자의 45%는 여전히 일상적인 사회활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신체적 회복뿐 아니라 심리적, 경제적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다.

경제적 부담 역시 환자들에게 또 다른 큰 고통이었다. 응답자의 40%는 이식 치료에 3천만 원 이상을 지출했으며, 63%는 치료비 부담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특히 재발 이후의 치료는 의료비뿐 아니라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장기적 경제 손실까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이 바라는 변화도 뚜렷했다. 설문에 참여한 환자 10명 중 7명(68%)은 신약의 신속한 도입과 건강보험 급여 적용 확대가 가장 시급하다고 응답했으며 이와 관련한 활동에 한국혈액암협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박정숙 사무국장은 “이번 설문은 급성백혈병 환자들이 치료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이식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되며 환자들이 재발 위험에서 벗어나 다양한 치료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약의 신속한 도입과 보험 적용 확대, 삶의 질을 고려한 치료 환경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혈액암협회는 앞으로도 환자 중심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와 의료계, 제약업계와의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는 단지 통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식이라는 큰 고비를 넘은 이후에도 환자들이 ‘완치’가 아닌 ‘지속적인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급성백혈병 치료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