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학 교수 / 고려대 안산병원
“전기밥솥 증기에 손이 닿아 수포가 생긴 1세 여아”, “화장대 고데기에 얼굴과 팔을 데인 또 다른 1세 아이”. 일상 속 순간의 부주의가 아이들에게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는 화상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걸음마를 막 시작한 1~3세 영유아의 경우 주변에 대한 호기심은 크지만 위험 인식이 부족해 화상 사고에 더욱 취약하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어린이 안전사고 동향 분석’에 따르면, 고온 물질로 인한 화상 사고는 2021년 이후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561건이 접수되어 전년 대비 21.7%나 증가했다.
그중에서도 ‘열탕 화상’은 소아 화상에서 가장 흔하면서도 중증도가 높은 유형으로 꼽힌다.
소아 응급실을 찾는 주요 화상 사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뜨거운 고데기나 냄비, 전기밥솥 등 고온 기구에 직접 손을 대거나 넘어뜨려 입는 접촉 화상이고 다른 하나는 국이나 끓는 물 같은 액체를 쏟아 입는 열탕 화상이다.
이 외에도 전기 콘센트에 이물질을 넣다 발생한 스파크로 인한 전기 화상, 빙초산 등의 화학 화상, 전기장판으로 인한 저온 화상 등 다양한 유형이 있다.
소아는 체구가 작고 피부층이 얇기 때문에 동일한 온도의 화상을 입어도 성인보다 더 넓은 범위에 손상이 생기기 쉽다.
특히 복부나 허벅지, 사타구니 등 넓은 부위에 걸쳐 발생하는 화상의 경우 치료 과정에서 반복적인 소독과 드레싱이 필요해 환아와 보호자 모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가장 중요한 초기 응급처치는 ‘화상 부위를 흐르는 찬물에 10~20분 정도 식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열기를 식히고 통증을 완화하는 것은 물론 피부 조직의 염증 반응과 부종을 줄일 수 있다. 이후에는 살균 거즈나 깨끗한 천으로 부위를 감싸고 가능한 한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한다.
응급실까지 가는 도중 아이가 고통스러워할 경우 타이레놀이나 부루펜 같은 시럽형 진통해열제를 복용시키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의사의 진료 전에는 절대 수포(물집)를 터뜨리거나, 연고·로션 등을 함부로 바르지 않아야 한다.
화상의 정확한 범위와 깊이를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연고 제거 과정에서 환아가 추가적인 통증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종학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연고나 로션은 의료진이 육안으로 화상의 깊이나 범위를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되며 오히려 치료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며 “화상이 넓은 경우에는 아무 것도 바르지 말고 흐르는 물로 세척 후 빠르게 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또한, 민간요법으로 자주 등장하는 감자, 된장, 소주, 얼음 등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상처 부위에 2차 감염을 유발하거나 피부에 자극을 줘 오히려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박 교수는 “소아 화상은 치료보다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며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는 전기밥솥, 전기주전자, 고데기, 커피포트 등 뜨겁고 위험한 물건들을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보관하거나, 안전장치를 설치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조리 시 아기를 안고 뜨거운 물을 사용하는 행위, 식사 직후 고온의 국이나 물이 담긴 그릇을 식탁 위에 방치하는 습관, 전기장판의 장시간 사용 등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소아 화상은 회복에 긴 시간이 소요되고 피부 이식이나 흉터 관리 등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사전에 충분한 주의와 환경 정비로 아이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가 될 수 있다.
부모와 보호자의 작은 관심과 준비가 아이들의 피부를 지키고, 미래를 지켜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