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옥희 교수 / 고려대 의대
세포 한 개의 노화가 왜 전신의 노화로 이어지는가? 국내 연구진이 이 오래된 의문에 세계 최초로 해답을 제시했다.
단 한 개의 노화세포가 어떻게 온몸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해주는 분자 메커니즘이 처음으로 밝혀지면서 노화 및 연관 질환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의 길도 함께 열리게 됐다.
고려대 의과대학 융합의학교실 전옥희 교수 연구팀은 노화된 세포에서 분비되는 ‘HMGB1(High Mobility Group Box 1)’ 단백질이 혈액을 통해 퍼지며 전신의 세포와 조직에 노화를 전파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연구는 미국 UC버클리, 터프츠대학교 등 세계적인 노화 연구진과 공동으로 진행됐으며 국제 저명 학술지 ‘Metabolism-Clinical and Experimental’(IF 10.9, 상위 4.6%)에 최근 게재되었다.
노화된 세포는 단순히 자신만 늙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정상 세포까지도 영향을 미쳐 함께 늙게 만드는 ‘노화-연관 분비 표현형(SASP)’을 형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나이가 들수록 신체의 다양한 조직에 노화세포가 축적되며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회복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번 연구에서 전 교수팀은 SASP의 주요 성분 중 하나로 알려진 HMGB1 단백질이 단순한 염증 유발 물질이 아니라 혈류를 통해 전신에 퍼지며 조직 전반에 노화를 유도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이 단백질의 ‘ReHMGB1(환원형 HMGB1)’ 형태가 전이성 노화에 깊게 관여하고 있으며,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전신 노화를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임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HMGB1 단백질의 활성을 차단할 경우 전신 염증이 줄어들고 특히 노화로 인해 기능이 저하된 근육의 재생 능력이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
HMGB1가 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수용체인 RAGE를 함께 차단했을 때도 노화 전이 효과가 크게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나며 HMGB1-RAGE 경로가 전신 노화 유도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단순히 노화세포를 제거하거나 억제하는 기존 접근법과는 달리 노화를 전이시키는 분자적 경로 자체를 차단함으로써 조직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노화를 특정 세포나 기관의 문제로만 보던 기존 시각을 전환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세포 수준의 노화가 전체 신체로 확산되는 ‘노화 전이’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전옥희 교수는 “노화가 개별 조직에 국한되지 않고, 혈액을 통해 전신으로 확산된다는 분자적 기전을 세계 최초로 밝혀낸 것”이라며 “이 과정을 제어함으로써 기능 저하된 조직을 회복시키고 노화 관련 질환을 늦출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및 마이오카인 융합연구센터(MRC) 지원으로 수행됐다.
공동연구에는 UC버클리의 이리나 콘보이(Irina Conboy) 교수, 터프츠대학의 크리스토퍼 와일리(Christopher Wiley) 교수 등 세계적으로 저명한 노화 연구진이 함께 참여했다.
세포 하나의 노화가 전신의 노화로 이어지는 현상, 그 중심에 HMGB1이라는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노화 및 관련 질환의 새로운 이해와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이번 연구 성과는 향후 노화 제어 기술과 조직 재생 의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