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교수 / 고려대 안산병원
외견상 건강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는 ‘돌연사’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질환이 있다. 바로 ‘비후성 심근병증(肥厚性 心筋病症)’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는 이 질환은 증상이 거의 없어 ‘조용한 병’으로 불리지만 심각한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심근)이 지나치게 두꺼워져 혈류의 흐름이 방해받는 질환이다.
일반적인 경우 고혈압이나 대동맥판 협착증 등으로 심장이 더 큰 압력에 저항해야 할 때 근육이 두꺼워진다.
하지만 비후성 심근병증은 이런 뚜렷한 원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근이 과도하게 비대해진다는 특징을 갖는다.
심장이 두꺼워지면 수축과 이완이 원활하지 않아 심방세동이나 심실빈맥 같은 부정맥이 생기고 이는 치명적인 심실세동으로 이어져 돌연사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경우 유전적 요인에 의해 젊은 연령대에서도 갑작스러운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대체로 무증상인 경우가 많다. 평소 특별한 이상이 없다가 실신하거나 돌연사로 인해 뒤늦게 진단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건강검진에서 심전도 이상이나 심장초음파 검사를 통해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가장 흔하며 돌연사 가족력이 있는 경우 가족 검사를 통해 조기에 진단되기도 한다.
진단은 심장초음파(Echo)나 심장자기공명영상(MRI)으로 심근 두께와 구조를 평가하며 일부 환자에서는 근육 내 섬유화나 지방조직 변성이 동반되어 질병의 진행 정도를 파악한다.
비후성 심근병증의 치료 목표는 ▲증상 완화 ▲심부전 예방 ▲돌연사 위험 최소화다. 먼저 약물치료를 통해 심박수를 낮추고 심근 이완을 촉진시켜 혈류 흐름을 개선한다.
그러나 약물로 조절이 어렵다면 두꺼워진 심근 일부를 절제하는 심실중격절제술이나 알코올을 주입해 근육을 부분적으로 위축시키는 관혈적 시술(심실중격 알코올 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
또한, 실신 병력이나 돌연사 가족력, 심근 비후 정도, 심실빈맥 존재 여부 등을 점수화해 돌연사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는 이식형 심실제세동기(ICD)를 예방적으로 삽입한다.
김용현 고려대 안산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비후성 심근병증은 대부분 무증상으로 지내지만 고위험군의 경우 돌연사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정기적인 심장 검진이 필수”라며 “특히 가족력이나 실신 병력이 있는 경우 반드시 전문의 상담을 통해 조기 발견과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절한 관리하에 있는 환자는 걷기, 요가, 자전거 타기 같은 저강도 유산소 운동이 오히려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단 고강도 운동은 돌연사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검사와 평가 후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예기치 못한 돌연사에 대비해 가족이나 보호자는 심폐소생술(CPR)과 자동제세동기(AED) 사용법을 익혀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조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질환이다. 가족력이나 심장 관련 병력이 있다면 정기적인 검진으로 ‘조용한 병’의 위험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