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임주 교수 / 고려대 의과대학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유임주 교수(BK21 의과학연구단 단장)와 박현미, 김대현, 이화민 교수 연구팀이 클림트의 대표작 ‘The Kiss(키스)’ 속 적혈구에 대한 의학예술적 분석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의과학적 문헌을 검토해 클림트가 ‘키스’에 적혈구를 배치한 이유를 추론하며 그의 작품이 단순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 생명 탄생을 상징하는 과학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음을 밝혔다.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성의 가슴과 무릎 부위에 빨간 원반 모양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적혈구와 유사한 형태를 가진다.

연구팀은 이러한 형상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생물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적혈구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산소를 운반하는 세포로, 클림트는 이를 통해 사랑과 생명의 연결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당시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간된 의학 문헌을 참고하며, 클림트가 ABO 혈액형을 발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Landsteiner)의 연구와 친교를 맺고 있던 해부학자 에밀 주커칸들(Emil Zuckerkandl)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주커칸들 교수는 1903년 클림트의 요청에 따라 예술인들을 위한 해부학 강의를 진행했으며 이는 클림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The Kiss’ 속 여성의 팔 윤곽을 보면 심장의 형태와 유사하다. 연구팀은 이 부분이 혈구세포의 순환과 생명 에너지를 표현하는 요소라고 해석했다.

또한, 여인의 무릎 부위에 배치된 적혈구 형상은 생리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는 여성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시기를 암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클림트는 인간 발생의 필수 요소인 생리적 현상을 작품에 녹여 넣음으로써 생명의 신비와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연구팀은 클림트의 ‘The Kiss’에서 적혈구 형상을 제거한 ‘RBC Knockout Kiss’를 제작하여 2022년 울산국제아트페어(UiAF)에서 관객 반응을 분석했다.

실험 결과 원본 작품을 본 관람객들은 ‘강렬함’, ‘화려함’, ‘생기’, ‘젊은 사랑’ 등의 키워드를 떠올린 반면 적혈구 요소가 제거된 수정본을 본 관객들은 ‘단조로움’, ‘고요함’, ‘생기 없는 죽음’을 연상했다.

이는 클림트가 적혈구를 활용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결과였다.

유임주 교수는 “클림트의 ‘The Kiss’는 단순한 연인의 사랑을 넘어 생명 탄생의 신비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며 “당대 의과학 지식을 예술적으로 녹여낸 그의 작품은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요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 사회에서도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번 연구는 예술 작품 속 숨겨진 과학적 의미를 조명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연구팀은 2021년 세계적 의학 학술지 JAMA(미국의학협회지)에 ‘The Kiss’ 속 인간 발생 3일간의 이야기를 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이에 대한 후속 연구로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속 적혈구 세포의 의학적-예술적 분석(Medico-Artistic Analysis of Red Blood Cells in Gustav Klimt’s ‘The Kiss’)’이라는 제목으로 대한의학회지(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