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구 교수 / 고려대 안암병원

화창한 봄날에도 이유 없이 무기력하고 우울한 감정을 느낀다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닐 수 있다.

58세 김 씨는 몇 달 전부터 집중력이 떨어지고 기억력이 흐릿해지며 몸의 변화도 눈에 띄게 다가왔다.

팔다리는 가늘어지고 배는 점점 불러오는 등 예전과는 다른 모습에 병원을 찾았고 ‘남성 갱년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남성 갱년기 또는 ‘후기발현 성선기능저하증’은 중년 이후 감소하는 남성호르몬(테스토스테론)으로 인해 나타나는 일련의 신체적·정신적 증상을 포함한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남성호르몬은 30세 이후부터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해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고 전형적인 증상이 동반될 경우 진단된다.

여성의 갱년기처럼 급격한 변화가 아닌 점진적인 진행 양상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이를 노화의 일부로 여기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증상으로는 성욕 감소 및 발기부전 같은 성기능 장애를 비롯해, 우울감, 무기력감, 분노 등 정신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이외에도 근육량 감소, 체지방 증가, 만성 피로, 불면증, 식은땀 등 다양한 증상이 동반되며 환자마다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남성 갱년기의 발병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등 대사증후군을 비롯해 심혈관계 질환, 수면 부족, 과도한 음주와 흡연, 스트레스 등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남성호르몬의 저하를 방치하게 되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까지 증가할 수 있어 적극적인 관리와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치료는 주로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주사제나 비강 겔 형태로 테스토스테론을 체내에 공급하며 이 과정에서 전립선암 여부와 혈색소 수치 등 사전 검사가 필요하다.

치료 후에도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통해 안전성을 점검해야 한다. 특히 자녀 계획이 있는 남성이나 전립선암 병력자, 급성 심혈관계 질환 치료 후 6개월 이내 환자 등은 테스토스테론 치료가 제한될 수 있으므로 전문의 상담이 필수다.

의학적 치료와 더불어 생활습관 개선도 남성 갱년기 극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은 갱년기 환자들을 위해 ‘삶의 질 센터’를 운영하며 체성분 분석과 신체 기능 검사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운동은 단순한 체력 향상에 그치지 않고 호르몬 치료의 효과를 높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박민구 고려대 안암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남성 갱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변화지만, 이를 방치하면 삶의 질 저하와 건강 수명 단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조기 진단과 치료, 그리고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 스트레스 조절을 통해 활기찬 중년과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며 남성 갱년기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 전환을 당부했다.

남성 갱년기는 더 이상 감춰야 할 질환이 아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가 보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증상이 느껴진다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호르몬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중년 이후의 삶을 더욱 건강하고 활기차게 만들 수 있다.